Let it be

누가복음 1:26-38


Intro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 1,2는 모두 동일한 밴드의 노래입니다. 바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와 렛잇비입니다. 팝송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고 제목을 알 수 있는 노래가 비틀즈의 이 두 노래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왜 비틀즈의 노래 제목과 같은 “렛잇비”인지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렛잇비를 작사 작곡한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노래는 아주 많은 부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4세의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폴 매카트니는 20대의 어느날 꿈 속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너무나도 그리던 어머니를 꿈에서 만난 폴 메카트니는 어머니가 정확히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신을 위로하며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말씀을 주셨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힘들 때에 자신에게 나타난 어머니 Mary에 대한 노래를 만든 것이 Let it Be 입니다. 


let it be 노래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이 가사가 이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처음과 끝입니다.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어머니 마리아가 내게 다가와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세요. “Let it Be”


이 노래를 만든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폴 메카트니에게 물었습니다. Mother Mary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냐고 물은 것이죠. 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물론 처음 이 노래를 만들 때는 Mother Mary는 제가 꿈 속에 만난 제 어머니였습니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 노래를 사용한다면 저는 행복할 것 같아요.” I'm quite happy if people want to use it to shore up their faith.


저는 오늘 설교를 통해서 이 노래가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고,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말씀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고지하는 수태고지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천사 가브리엘은 6개월 전에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찾아가 사가라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임신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뒤에 엘리사벳의 사촌인 마리아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해서 5개월 동안 임신 사실을 숨기고 숨어 지냈고 그 이후에는 사람들에게 공개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6개월차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왔을 때는 이미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임신 소식을 알았을 것입니다.


27절에 보면 가브리엘이 찾아간 시점이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한 후이고 아직 결혼을 하지는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찾아가 평안의 인사를 전합니다. 성경에서 천사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많은 경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고 말하고 “평안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깜짝 놀라서 도대체 이 일이 무슨 일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천사가 찾아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천사가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사람에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느낄 수 없는 거룩한 존재에 대한 경외감 때문에 무서워하며 떨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을 광야에서 만날 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30절에 천사가 마리아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무서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는다고 천사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의 천사가 여러분에게 오면 무슨 말씀을 전해 주실 것 같으십니까? 많은 경우에 천사가 우리에게 온다면 아주 행복한 일들이 일어나거나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 가요 중에 “기분 좋은 상상”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는 한국 사람들이 천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어느 날 천사가 네게로 와서 너의 소원 하나를 물어본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말할래?” 


천사가 오면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이고, 마귀 사탄이 우리에게 오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우리는 흔히 생각하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천사가 전해주는 소식이 우리에게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가 그랬습니다. 현재 요셉과 약혼한 상태인데, 결혼 전에 아기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천사에게 들은 것입니다. 신명기 22장 23절24절은 약혼한 여자가 약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지게 되면 두 사람 모두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돌로 쳐서 죽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고 율법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말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자신이 가진다는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으로 자신을 내모는 말씀이었고,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더럽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은 그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임신을 해서 낳을 아들이 큰 자가 될 것이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고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주었던 왕으로서 권위를 주며 영원히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는데도 마리아는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분명 축복의 말씀이지만, 그 축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도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34절에 마리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천사의 말을 부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외면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천사가 뭐라해도, 하나님의 천사가 뭐라고 말해도 처녀가 홀로 잉태하여 아기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나의 아들로 태어난다고 해도, 약속된 메시야가 내 뱃속에서 잉태된다고 해도 그로 인해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고뇌하고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다시 말씀합니다. 35절부터 3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너에게 임할 것이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덮을 것이므로 너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될 것이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날 것이니 이 사실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임신할 수 없었던 엘리사벳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해서 이미 임신 6개월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이 고뇌하고 번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부인하려던 마리아를 뒤흔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자신의 생각 속에서 처녀가 홀로 임신하는 것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이 일만은 어쩔 수 없다고 굳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밑바닥에는 어떻게든지 약혼자에게 의심을 사고 사람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에 의해서 마리아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재구성되었습니다. 아무리 임신할 수 없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했다고 해도, 지금 고통과 두려움의 순간에 마리아의 하나님은 능력이 부족한 하나님이었으며 모든 일을 능히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마리아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분명하고 단호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마리아가 순간적으로 품고 있었던 생각의 중심을 꿰뚫어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능치 못함이 없다는 것을 믿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설령 그 말씀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 아닐지라도, 오히려 나를 고통으로 밀어넣는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무엇입니까? 복된 삶은 무엇입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행복한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요구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어찌 이 일이 있으리요?”라고 물어보면서 도망가시겠습니까?


어쩌면 우리가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복을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한 복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이끌어가신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까요? 많은 돈, 직업에서의 성공, 사람들로부터의 인기, 좋은 학벌…. 객관적으로 좋은 조건들이 있으면 삶의 괴로움이 적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일정 부분 그것이 사실인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삶의 제일 큰 기쁨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조건들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들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궁극적으로 기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을 기쁘게 만들까요?


그것은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뤄지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내 삶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잠시 살다 가는 이 땅의 허무한 인간의 삶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 가운데 이루어진다면 그것만큼 우리 인생을 복되고 기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있겠습니까? 사망의 권세 아래서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 아래 놓여 있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인생으로 변모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마리아는 고백합니다. 

1장 3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이 부분을 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도 버전마다 각각 다르게 번역하기는 하지만, ESV 성경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And Mary said, “Behold, I am the servant of the Lord; let it b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Let it b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이것이 마리아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저는 하나님의 종입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섬기는 사람이오니 하나님의 뜻이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가브리엘 천사의 수태고지로 인해서 근심하고 괴로워하던 마리아가 이제 기쁨으로 고백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이뤄지는 것이 가장 복되고 기쁜 일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장 극심한 고통과 근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확신의 고백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Let it b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소서


Let it be라는 노래를 세상 사람들은 그저 순리대로 사세요라고 생각하거나 다 잘 될거에요 라고 생각하며 부를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노래를 다르게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근심 중에 있을 때, 성모 마리아가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고백하는 것입니다. Let it b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우리를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복음의 말씀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이번 주에 Let it be를 한 번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불러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설명해 주십시오. Let it Be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삶에 이뤄지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Let it be 말씀대로 내게 이뤄지는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가장 바라는 일이었지만, 절대 이루어질 수 없어서 상상조차 못 해본 일을 연기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곳에서 즐겨 보내는 거의 유일한 TV 프로그램이 있다면 "꽃보다 청춘"이다. 아이슬랜드 편을 보다가 시험 때문에 끝까지 못 보고 중단했는데, 두 번째 컴스가 끝난 후 아프리카 편을 보았다. 


"최택"으로 연기했던 박보검이 처음 "응답하라 1988" 오디션에서 해야 했던 연기는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가 재혼하는 엄마에게 전화로 축하하는 장면이었다. 박보검은 그 연기를 하면서 울먹이다가 이내 울어 버렸다. 칠봉이가 운 것보다 더 서럽게 울어 버렸다. 


박보검은 제작진에게 초등학교 4학년 때 실제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어쩌면 박보검에게 어머니와의 통화는 평생 꿈꾸어온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와 얘기하고 싶고 전화로라도 목소리를 듣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을 연기로 해야 했을 때, 그 순간 더 이상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엄마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박보검은 실제로 "응답하라 1988"에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최택"으로 연기를 해야했다. 연기지만 연기가 아닌 상황을 감당해야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살지만 항상 슬픔을 머금고 살 수는 없는데, 연기하는 동안 더욱 더 자기 자신에게 어머니를 일찍 잃은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게 해야 했다. 자신의 실제 상황과 동일하기 때문에 연기하기 더 쉬울 수도 있지만, 더 힘들 수도 있다. 본인에게 있는 상처를 연기하면서 더욱 더 스스로에게 부각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고, 그 마음을 연기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평소에 즐겨 하는 말처럼,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자신이 겪은 아픔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말 "감사하다"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외치는 "감사하다"는 말이 그래서 더 감사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감사하다"고 외치면 감사한 일들이 더 많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그가 믿고 있는 것처럼. 



페이스북에 몇 년 동안 계속 글을 썼는데, 이제는 그 공간도 글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 다시 블로그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해롭게 하지 말라(출애굽기 22:21-24)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찌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모세에게 주신 후에 이를 더 구체적으로 풀어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 새벽에 22장 중에서 21절부터 28절까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당시 사회에서 가장 작은 자들, 약한 자들, 힘이 없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는 자들을 해롭게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약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첫째가 이방의 나그네입니다. 농경이 중시되는 고대 사회에서 자기 땅도 없이, 기득권도 없이 남의 나라 땅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차라리 이스라엘은 인구라도 많아서 서로 모여 있으면 위안이라도 되었겠지만, 소수 민족의 이방인들은 더 외로웠고, 더 가난했을 것이며, 더 힘이 없어 부당하게 당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 중에 제일 처음으로 나그네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순서는 다른 본문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당시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억압받기 쉽고, 학대받기 쉬운 계층을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로 들고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는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그들을 압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명령을 어겨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이 통곡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시고 우리를 엄벌에 처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준 고통만큼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는 오늘 읽은 출애굽기 본문 이외에도 많은 곳에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환대하고 그들을 억압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0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신명기 27:19

객이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명기 24: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가 피해를 입는 특별한 상황

그런데 대부분의 본문에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가 등장하는 특별한 상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이 재판 가운데 억울한 일을 겪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회 내에서 특별히 지인이 없고, 권력에 줄 댈 것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인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는 억울한 일을 겪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특별히 그들이 겪는 억울함은 그나마 있는 돈도 빼앗기거나 땅을 잃거나 가진 옷들도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 억울한 상황에 내몰려도 그들을 보호해주기 위해 수고를 할만한 사람들이 없는 바로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거짓 증거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얼마 있지도 않은 재산마저 빼앗기는 그런 상황을 그들은 언제든지 겪을 수 있는 사람들이며, 이 약자들이 재판에 의해 그 억울함을 풀 수 있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도 어려운데 수천년 전에는 얼마나 더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특별히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재판과 정의에 관심이 많으시며 그들의 어려움이 재판에 의해 악화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결단코 그리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에, 과부나 고아를 괴롭게 하는 자들을 칼로 죽인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결과 괴롭히는 자들이 죽고, 그들의 아내들이 과부가 되고, 아들들이 고아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토록 무자비한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회적 약자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에 대한 무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에 힘없고 돈없는 자들에게 부당한 판결을 내리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돈이나 권력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모르고, 그 돈과 권력으로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그들은 결국 스스로 하나님 노릇하려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미국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많은 경우 미국 문화 가운데 남아 있는 기독교적 가치의 영향으로 나그네를 환대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외국인에 대한 무시와 혐오도 가끔은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환대와 보호를 명하시는 본문을 볼 때마다, 또 우리가 미국 땅에서 가끔 겪는 나그네로서의 서러움을 토로할 때마다, 제 자신은 얼마나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따뜻하게 대했으며 한국 사회의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마주칠 일도 별로 없는 환경 속에 살았지만,- 그들을 외면하려는 마음이 제 안에 있었다는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괴롭히려고 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제정하신 법입니다. 그 법대로 살 때 우리 삶이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가 회복됩니다. 모세에게 명한 그 규정 하나 하나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을 주신 정신을 따라서 오늘날 우리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약한 자를 돌아보고 섬기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칼빈 공동체 안에서도 가장 약한 자, 외로운 자,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누군지 돌아보고 섬기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미국 땅에 들어와 도움이 필요한 신입생들과 유학생 남편을 따라와 고생하고 있는 사모님들과 자녀들 그리고 세상의 끝과 같은 유학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유학생들. 우리 공동체 안에 있는 약한 자들을, 가장 작은 자들을 돌아보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Blossoms Falling
                              Lee Hyung Ki



Beautiful is the sight of a man
who walks away
knowing when to leave.

My love that endured
One passionate spring
now withers.

Fallen blossoms scatter
Under the benediction of a farewell.
It is time to leave

Towards exuberant shades of green,
then soon towards fall
when fruits ripen.

My youth dies as it should: like a flower.

Let us part
On the day when blossoms fall
with delicate goodbye of outstretched hands.

My love, my bidding of farewell,
the woeful gaze of my soul,
that senesces like aged water in an old well.


Heavenly Father, we confess that

   there are times we are overwhelmed by our troubles;

   there are times we feel alone in our worries;

   there are times we become too cynical to hope.

 

Forgive us

   for doubting your love, 

   for being tempted by despair

   and for allowing our devotion to dwindle.

 

Have mercy on us, O Lord.

   Open our eyes to your glory, 

   our minds to your greatness

   and our hearts to your power.


In Jesus name, we pray. Amen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1. BlogIcon 姜군 2011.05.30 08:07 신고

    형 오랜만에 포스팅 하셨네요

  2. BlogIcon 강언 2011.05.31 04:14 신고

    페북보다 조용한 여기에도 가끔 글 남기려고..

    잘 지내지?

    우리 모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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