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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로운 세상

왜 언론은 사실의 전달보다 논란일으키기를 좋아할까?

by 강언 2009. 12. 22.

1. 아이리스 표절 논쟁



드라마 아이리스가 소설"후지산은 태양이 뜨지 않는다"를 표절했다는 소설가의 주장이 몇 주 동안 작은 논쟁이 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그 소설가가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과 이에 대한 드라마 제작사의 입장 그리고 소설가의 재반박 기자회견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왜 언론은 최소한 스토리 라인이라도 비교하여 소개하고 독자들의 판단을 구하는 과정은 제외된 채, 왜 논란만을 전달하고 있을까에 대한 의문 말이다. 하지만 이 작업을 수행하는 언론사는 전무한 편이다 왜 그럴까? 그 과정이 그리 복잡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논란이 된 소설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지금은 책조차 구입하기 힘든 상황이라 제대로 비교하기 어려운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출판사가 인터넷 서점에 소개해 놓은 줄거리만 보더라도 대략적인 비교는 충분히 가능하다.  드라마 "아이리스"는 전 세계에 비밀리에 활동 중인 다국적 군산복합체 혹은 그 이상의 조직인 '아이리스'가 한반도의 분쟁을 조장하는 음모에 맞서는 주인공 김현준과 남북한 관계자들의 이야기이다. 소설 "후지산...."은 일본의 핵무장과 이에 남북한의 공동대응이 중요한 스토리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스토리라인 상으로 비교했을 때 이 둘을 유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소설"후지산.."(1999)이 이현세의 만화 "남벌"(1994)의 스토리라인과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소설가가 주장하는 세부적인 일치점들은 장르 특성상 첩보 액션물 영화에 공통으로 나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알고 있는 일반인들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대중에게는 다만 아이리스 표절 논쟁만이 각인될 뿐이다. 진실은 중요치 않고 논쟁만 남는다. 그런데도 언론은 왜 이 상황을 방치할까? 언론은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주요한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이익이 진실보다 우선한다. 논란은 흥미를 유도하고 흥미는 기사를 보게 만들고, 그것이 자사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논란이 조기에 종결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할 뿐만 아니라, 논쟁을 증폭시키는 것은 언론사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전가되지 않는 꽃놀이패이다.그러므로 언론 스스로 이런 논란을 정리하는 기사를 만들어내는 날은 앞으로도 쉽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논란이 되는 기사일수록, 기사 속에서 주장과 팩트를 구분하고 팩트만을 취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낚이며 언론사의 질 낮은 기사들의 스폰서가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2. 한명숙 총리에 대한 검찰 기소 사건에 관하여
지금까지 언론에 나온 팩트만 정리하자면
곽영욱 전 남동발전 사장이 (인사청탁차 만났다는 것은 검찰의 주장) 2006년 12월 20일에 총리공관에서 한명숙 당시 총리와 정세균 당시 산자부 장관과 강동석 당시 건교부 장관을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검찰이 체포영장에 밝힌 바로는 "석탄공사"사장 자리 청탁을 했다고 한다.
한명숙 씨는
2006. 04. 20 제 37대 국무총리 취임해서 2007. 03. 07 제 37대 국무총리 이임했고, 곽영욱 씨는2007. 04. 03 남동발전 사장 취임했다.
분명 개연성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정황과 개연성만으로 혐의를입증할 수는 없다.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검찰도 "5만불을 두고 나왔다"고 명기했겠는가? 직접 받았다는 것을 증명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곽씨의 진술이 계속해서 번복되고 있고, 진술 이외에는 아직까지 인사청탁을 위한 대가성 뇌물이 건네졌다는 증거도 없다. 심지어 곽씨가 남동발전의 사장이 됐기 때문에, 석탄공사 사장 자리를 청탁하기 위해 돈을 건넸다는 곽씨의 주장 또한 무색해져 버렸다.
식사 자리에서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도청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으며 도청으로 획득한 증거는 인정되지도 않는다. 뇌물은 공관에 "두고 나왔다"고 하니 누가 받았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실제로 "두고 나와"는지도 알 수 없다.

지금까지 팩트 상으로는 검찰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 보면 수많은 정치인 뇌물 수수 사건에 대해서 검찰이 입증하지 못한 사건들이 숱하게 많다. 그런데 지금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기소는 그 이전에 무죄 판결을 받은 것보다 훨씬 입증하기 어렵다. 박지원, 박주선 의원 사건이 검찰에게 훨씬 쉬웠던 싸움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어려운 싸움을 검찰이 왜 시작했을까? 이 의문에 대해서 검찰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마 "혐의가 있어서 수사를 시작했다"는 아주 일반적인 설명 뿐일 것이다. 하지만 더 자세하고 납득할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검찰이 혐의가 나와도 포기했던 수 많은 사건들을 일반인들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는 기사는 검찰이 언론에 발표하는(혹은 흘리는) 수사상황이 대부분이 될 것이다. 언론에게는 소스 제공자와 논쟁 유발자가 필요한데 그 역할은 검찰이 전담하고 있고,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단 기소되면 우리나라에서는 검찰의 소리만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기소되어 언론에 노출되는 모든 자에게는 화가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혐의입증이 불가능하여도 이 싸움에서 검찰 또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있다.


1과 2의 사건 이외에도 수 많은 논란이 우리 사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팩트에 근거한 진실 규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실이 만드는 이익보다 거짓 논쟁이 더 많은 이익을 만들어 내는 서글픈 현실의 틈바구니 속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