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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발견

아내의 답장

by 강언 2008.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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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당신에게

 

모처럼 쉬는 날, 당신의 편지를 받아들고 해야 할 일들을 뒤로 한 채 당신을 생각해 봅니다. 4년간의 일상적이면서도 참 풍성했던 대학시절의 만남, 기쁨과 환희 그리고 고민과 눈물로 어우러졌던 3년간의 연인으로서의 만남, 그리고 ‘가정’이라는 가장 축복된 자리에서 기대어 설 수 있었던 1 5개월의 부부로서의 만남. 그러고 보니 당신이라는 사람을 알아온 지도 8년을 훌쩍 넘어섰네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통해 만나게 하신 여러 귀한 만남이 있지만, 지금까지의 만남 중에서 최고의 선물은 당신이에요. 지금까지 변함없는 신실함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사람이 바로 당신이에요. 내 마음의 공백기에도 기다림의 침묵으로 옆 자리를 지켜주었고, 일상의 소소한 부탁과 바램에 한 번도 'No'라고 대답한 적이 없는 당신. 당신이 일상에서 보여준 그런 신실함은 그러하지 못한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은 둥지가 되어 주었어요.

 

그 둥지가 너무 따사롭고 행복해서 학기 중의 당신의 부재로 인한 공허감은 여전히 크게만 느껴지나 봐요. 지금껏 그 어떤 경우에도 내적인 강인함을 자부했던 내가 어김없이 주일 저녁이면 당신 앞에서 눈물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반복되는 Gloomy monday Happy friday를 보내며 울고 웃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절을 잘 감내하다 보면 그 만큼 더 기쁜 날이 오겠지요?

 

물론 당신을 천안으로 내려 보내지 않아도 되는 날이 무척이나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지금 서로가 잠시 떨어져 있음으로 인해 주어지는 유익도 놓치지 말아야 겠어요. 이십 몇 년을 순전히 ‘나’란 사람으로 살아오다가, 당신의 아내로 그리고 이제 곧 태어날 여울이의 엄마로 점점 역할이 늘어나는 과도기적인 내 삶에 하나님께서 어쩌면 마지막 보루로 주신 귀한 훈련의 기간일지도 모르니까요. 신실하고 진지하게 말씀으로 당신을 만나는 이에게 슬며시 옷깃을 열어 당신을 비추어 주신다고 하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그 분 앞에 엎드림으로 맛보는 비밀스러운 소통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단독자로 서는 시간이 되길 소원해요.

 

이제 여울이 만날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어요. 우리 두 사람에게 허락하신 새 생명이 그냥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부터 고백했었고, 두 사람의 사랑과 하나됨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란 사실을 또한 알게 되었죠. 당신도 그러했겠지만,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믿음의 가정’에 대한 갈망함이 누구보다 컸었고, 가정 안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고 싶은 소원이 컸던 나였기에, 당신과 이룬 가정이 얼마나 축복되고 또 그 안에서 자라날 여울이가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몰라요.

 

그리고 여보. 만삭의 몸으로 근무한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없는 주중의 시간 동안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나’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고, 주위의 고마운 분들이 따뜻하게 격려해 주시는 공간이니, 여울이도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자라 줄 거예요. 병원이란 곳은 인생을 배우기에 참 유익한 곳이에요. 건강을 잃음으로 삶의 한 부분 혹은 전부를 읽어버린 뭇 사람들을 만나, 인생의 진정한 아픔이 무엇인지 또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는 곳이에요. 말 한마디에 손길 하나에 사람의 마음이 오고 가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구요. 집에서 여유로이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좋은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아가들보다는 여울이가 몸이 조금 힘들지는 몰라도, 태중에서부터 엄마를 통해 듣고 경험한 것들이 녀석의 내면에 귀한 자양분으로 흩뿌려 질 거예요.

 

당신이 오는 금요일까지 나랑 여울이 둘 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을게요. 주중에 떨어져 있는 기간도, 기쁨으로 만나는 주말도,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로 만나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는 당신과 내가 되길, 그러한 물길로 함께 흘러가는 우리가 되길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줄일게요. 사랑해요 더욱.

 

당신의 사랑, 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