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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싱: 누가 고통 당하는 자들의 이웃인가?

by 강언 2008. 9. 25.

 

신앙의 눈으로 영화읽기: 《크로싱》

누가 고통 당하는 자들의 이웃입니까?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율법사의 질문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는 영생을 얻는 방법을 예수님께 묻고 스스로 답하였다. 다시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자신의 이웃이 누구인지 예수님께 물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의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천하라고 명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그는 자신의 이웃이 누구인지 알려 달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기 이웃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만 사랑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누가 고통당하는 자의 이웃인가?

예수님의 비유 속에 강도 만난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이었다. 그를 보고도 외면했던 두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인이며, 그들은 성전에서 섬기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된 사람이었다. 그들의 직분이 그들의 삶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 돕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을 보고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외면해 버렸다. 그들의 눈에 강도 만난 사람은 그들의 이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누구도 길 가다가 처음 만난 사람을 이웃이라고 선뜻 생각하지 않는다. 이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를 돕지 않아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도,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웃이 아니기에 외면하고, 보고도 피하여 자기 길을 가는 것이다.

직분자들의 불순종에 대비되는 사마리아인은 예루살렘을 다녀오는 길이 아니었다. “여행 중에” 우연히 강도 만난 자를 보게 된 것이다. 또 그는 유대인들에게 무시당하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직분자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외면했지만, 사마리아인은 강도 당한 자의 이웃이 되어 준다. 고통 당하는 자를 보고 불쌍히 여기고,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수고하여 도와 줌으로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된다.

하나님께 풍성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가장 절실하게 찾는 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들이 바로 이 땅에서 고통 당하는 자들이다.


누가 북한 주민의 이웃인가?

“크로싱”은 오늘 한반도 땅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려 주는 영화이다. 가난과 질병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던 북한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생명을 걸고 남한으로 넘어오고 있는 현실을 보여 준다. 탈북과 입국의 과정에서 일어난 가족의 처참하고 생생한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진실”이 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아이들이 받는 학대와 고통, 북한의 인권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외면하고 싶다는 것이다. 내 이웃 중에 학대와 기근과 죽음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영화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가족의 약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북한을 떠나야만 했던 아버지는 뜻하지 않게 한국으로 오게 되고,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나선 열 한 살의 아들은 삶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






특별히 영화적 메시지를 논하는 것보다 오늘날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가장 끔찍한 일의 실상을 아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다. 고통 당하는 현실을 보고 공감하고, 그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분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으로도 큰 진전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내 새터민(탈북자의 새 명칭)만 2007년 현재 1만명이 넘어선 상황에도 한국 내 새터민과 북한의 주민들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율법사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강도 만난 자를 도운 것은 하늘의 천사가 아니었다. 고통 당하는 자를 보고 불쌍히 여긴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이 땅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나의 이웃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 가운데 드러내게 된다. 이 일을 감당할 자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당한 자를 “보고” 그를 불쌍히 여겨 도운 것처럼, 우리도 “크로싱”을 보고 고통 당하는 자들의 눈물을 알고 그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미 들어와 있는 새터민을 차별 없이 대하고, 우리 마음 속 차별부터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