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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음악

영화읽기: 체인질링(2008)

by 강언 2009. 4. 17.

신앙의 눈으로 영화읽기: <체인질링(Changeling, 2008)>

이나 고아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1920년대 미국 LA

영화 “체인질링”은 공권력의 거짓과 이에 저항하는 한 여인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는 1920-30년대의 LA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화국에 근무하는 크리스틴 콜린스는 남편과 헤어져 아들 월터를 키우고 있다. 어느 날 직장에서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크리스틴은 아들 월터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실종 당일에는 신고조차 받지 않았던 LA 경찰은 5개월이 되도록 월터를 찾지 못했고, 월터 실종 사건은 LA 경찰의 무능과 부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되어 LA경찰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실종 5개월 만에 그들이 월터를 찾았다며 크리스틴에게 한 아이를 데려왔는데, 그 아이는 월터가 아니었다. 청소년 수사국의 캡틴 J.J 존스는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엄마 크리스틴의 말을 묵살하고,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몰아 LA 시립 정신병원에 감금한다. 자기 아들을 찾고 싶은 엄마를, 공권력을 무시하는 정신 나간 여자로 치부하고 만 것이다. 이로써 법 질서는 확립된 것처럼 보였고, LA 경찰에 대한 도전도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공적인 거짓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하지만 모두를 잠시 속이거나,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어도 모두를 영원히 속일 수 없다는 격언은 그 때에도 유효한 것이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기 때문에(시편 5:6) 거짓에 기초한 권위와 질서는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공적인 거짓말에 대해서는 엄히 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불의한 재판을 저주하시고, 거짓된 증거로 판결을 왜곡하는 증인이 되지 말 것을 명령하신다(출애굽기 23:2). 그 사회의 약자인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신명기 27:19)이라고 선포하셨다. 공적인 거짓말은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대한 도전이며,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무신론적 행동이다.

영화 속 브리그랩 목사는 LA경찰의 무능과 부패를 고발하고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크리스틴을 돕는다. 공권력에 대해 순종하고 그 권위를 존중하는 것이 목사로서 마땅한 자세라는 것을 그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약자에 대해 불공정한 권력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그 뜻에 순종하여 약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그것이 진정 공권력을 바로 세우는 것이며, 공권력이 마땅히 받아야 할 진정한 권위와 신뢰를 되돌려 주는 것이기에 그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브리그랩 목사의 도움과 크리스틴의 강단있는 저항으로 공권력이 저지른 잘못을 밝혔고, 그에 대해 책임도 묻게 되었다. 이 일이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잘못된 공권력 관행 전체를 개선할 수 있었고, 당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갔다. 이와 같이 공적인 영역의 변화는 중요한 것이다.

공익과 한 영혼 모두를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

공권력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수의 이익이 소수의 이익보다 우선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소수의 누군가는 소외되고 배제되기도 한다. 그러나 소수를 희생하여 다수에게 이익이 돌아간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부여하신 본질적인 사람들의 권리를 빼앗거나 제한할 수 없다. 제한할 수 없는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 과정에서 다소 지체되고, 다수의 이익이 줄어들더라도 그 길을 굳건히 걸어가야 한다. 더구나 다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공적 거짓을 일삼는다면 우리는 무자비한 집단이 되어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공동체의 유익을 도모하는 사람이다. 약자를 억압하는 거짓에는 단호하고 공동체를 섬기는 공권력을 세워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