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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by 강언 2008.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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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떻게 임하는가?__영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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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평생을 말없이 지내시다 돌아가셨다. 형마저 타지에 공부하러 일찍 떠나 버렸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남아 있던 동생은 ‘은둔형 외톨이’처럼 살고 있었다. 형이 결혼해 집으로 돌아왔지만, 같이 사는 것이 불편해서 차고에 살아가는 이 사람이 영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주인공 "라스"이다.

말은 없지만 착하고 성실한 그를 마을 사람들은 사랑했고, 형수 카린은 어머니처럼 그를 돌보려고 하였다. 모두들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기기를 바랬다. 하지만 어머니도 없이, 말없는 아버지와 보낸 유년기는 트라우마가 되어 대인관계를 어렵게 했고, 특별히 이성과 친해진다는 것을 힘들게 했다.

그런 그가 사랑에 빠졌다. 형과 형수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형과 형수의 눈에 보이는 현실은 그렇게 사랑스럽지도, 기쁘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가 데려온 여자친구는 사람이 아닌, 인형 "비앙카"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드러난 현실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눈에 보이는 현실로 판단하면 라스는 집안의 수치이고, 동네의 부끄러움이 되고 만다.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집안에 이와 같은 일이 생겼다면 당장 호적이 파이고, 문밖으로 쫓겨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형과 형수는 쉽고 넓은 길 대신, 좁고 어려운 길을 택한다. 라스처럼 인형 비앙카를 살아있는 여자 비앙카로 대하기로 한 것이다. 형과 형수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모두 라스처럼 비앙카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대해 주었다.

라스가 어렸을 때부터 겪어 온 아픔과 상처에 대해서 온 동네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라스를 위해서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다. 인형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어색하고 어렵고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라스를 돕기 위해 좁고 어려운 길을 모두가 함께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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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비앙카를 받아들이고, 비앙카와 친구가 될수록 라스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된다. 자신을 짝사랑하는 직장 동료에게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마음을 열게 된다. 아무도 이해해 줄 수 없었던 그의 상처가 결국 인형을 사랑하는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것은 비앙카를 받아 주는 것이었다.

라스를 도와주기 위해, 비앙카를 사람처럼 대해 주는 가족들과 공동체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에게 오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리고 친구인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주셨다. 그 길은 좁고 어려운 길이었으나 많은 사람을 구하는 사랑의 길이었고, 그 길 끝에는 회복되고 구원 받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라스의 행동은 누가 보아도 잘못된 것이었다. 하지만 라스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그를 책망한다고 해서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희생과 수고의 터 위에서만 사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수고와 희생으로 라스는 고립된 외톨이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도 그들처럼

이 땅 가운데 상처입고 아픔 많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가족 안에서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직장에서도 우리는 상처의 생산자요, 소비자이다. 또 라스처럼 어렸을 때 받은 상처로 인해 정상적인 대인관계가 어려운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회복시키셨다. 오늘도 예수님의 사랑만이 사람을 회복시키고 구원시킨다. 그 사랑은 하늘로부터 허공에서 임하는 사랑이 아니다. 예수의 사람들인 우리를 통해서 온 세상에 전해진다.

라스의 가족과 공동체는 그 사랑을 라스에게 전해 라스를 회복시켰고 빛의 자리로 인도하였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 사랑을 애타게 찾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 교회 공동체에, 가족들에게, 직장 동료에게 우리가 그 사랑을 전해야 한다. 한 사람의 회복과 구원이 우리를 통해 전해지는 예수님의 사랑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