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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에 해당되는 글 2

  1. 2016.07.28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
  2. 2016.07.26 마음에서 나오는 것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

2016.07.28 06:26 | Posted by 강언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


4:1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4: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4: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도입: 그냥 커피와 T.O.P]


한국에는 많은 커피 전문점이 있기로 유명합니다. 식사 후 5천원 내외의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하더라도 많은 커피 전문점과 커피 음료들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부터 본 커피 음료 광고 중에, T.O.P라는 커피 광고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비교광고입니다. 저 사람이 마시는 것이 그냥 커피면 내가 마시는 커피는 T.O.P야 라는 문구가 인상적인데다가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절대 그냥 평범한 얼굴일 수 없는 영화배우 원빈이 광고 모델을 했기 때문에 더 분명하게 평범하지 않은 커피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원빈이 이런 대사를 합니다. 


“니가 그냥 커피였다면 이 사람은 나의 T.O.P야”


원빈 정도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 해야 하는 대사를 제가 해서 죄송합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나 누리고 있는 것이 남들보다 특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인생을 오래 사신 분들은 “중간만 하자”, “평범한게 제일 좋은 것이다”라고 조언하시지만, 보통의 사람들의 마음에는 남들과 다른 무엇을 가지고 남들과 다른 대우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리미엄 카드가 있고, 명품이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관점]


사람들이 이렇게 남들과 다른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에 관심이 많으실까요? 하나님께서도 남들보다 특별한 사람들을 이 땅에서 찾고 계신 것일까요? 조금 더 똑똑하고 멋지고 특별한 사람들을 찾아 다니고 계실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계신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과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에 대한 속죄의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시고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성자 하나님,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모두 동일한 한 분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엘로힘은 하나의 신을 뜻하지 않고 신들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나 히브리어와 같은 언어는 독일어처럼 단수와 복수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동사도 단수일 때와 복수일 때를 구분합니다. 그런데 엘로힘은 분명 복수 명사인데, 엘로힘과 연결된 모든 동사들은 다 단수로 쓰입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1장 26절, 27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기서 분명하게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는데, 절대 한 명, 싱글에게 부칠 수 없는 말인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이 이르시되는 한 분이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수 동사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에서 만들고는 복수 동사입니다. 여기에 삼위 일체라든지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표현이 없지만, 연결시켜서 생각을 해보면 한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는데, 삼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삼위 하나님의 모양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이 누구입니까? 남자 아담입니까? 아니면 남자와 여자 모두입니까?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아담 혼자이겠습니까 아니면 아담과 하와이겠습니까? 창세기 1장 27절은 여기에 대해서 분명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만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창조할 때 남자와 여자를 함께 창조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너무나도 다른 두 존재가 함께 할 때 비로소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각자 구분되는 분이시지만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인것처럼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지만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루고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할 때, 가장 핵심적인 속성은 바로 서로 구분된 두 존재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복수성과 단수성을 함께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인데 그것이 바로 사람이 받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기관이 딱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가정과 교회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딱 이 두 기관에 대해서만 “한 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연합된 한 몸 공동체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한 몸 안에 있는 지체이며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남편이 한 몸을 이뤄서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로 전혀 다른 사람들이지만 남편과 아내로 만나서 하나가 됩니다. 서로 성격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지만 교회의 지체로 만나서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방식이며 사명입니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4장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바울이 주고 있는 권면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무엇이겠습니까?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입니다. 에베소서 1장부터 3장까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설명한 바울이 이제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면서 주는 첫번째 권면이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2000년전에는 사람들로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해서 구분되었습니다. 유대인의 기준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있었고,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이 있었으며 사마리아인 있고 또 지파에 따라 레위지파 베냐민 지파 다윗 지파등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분짓는 기준이 명확했습니다. 이러한 기준은 매우 강력해서 예수님이 직접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의 차별과 편견은 고쳐지기 어려웠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 안에도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교회로 모여 있지만 사람들은 하나가 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나와 저들이 같지 않다,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수십년 수백년 수천년동안 전해 내려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교회가 있는 에베소라는 도시는 지금의 터키인 소아시아의 항구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방신들을 숭배하고 있었고, 나라를 잃고 떠도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소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던 당시 이방인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에베소 교회가 세워졌고 바울이 2년간 두란노 서원에서 하나님나라를 가르쳐서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에는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들어와 있었고 출신과 성분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얼마나 갈등이 많았겠습니까? 이방신을 섬기던 습관이 남아 있어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이전에 이방신을 섬기던 방식대로 하지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먹는 음식에 대해서도 유대인에게는 금지된 음식이 이방인들에게는 가장 선호하는 음식인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갈등의 근본 문제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바로 자신들이 누구인지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것입니다. 무엇을 모르고 있을까요? 우리가 왜 교회로 모이게 되었는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었는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하나로 모으신 것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각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효력있게 끼치셔서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이 그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필요한 부르심이며 온 인류가 간절히 구해야 할 부르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서 죽었고, 사망의 권세 아래 눌려서 사단의 종 노릇하던 존재로 살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고,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사랑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결과인 죽음을 받아들이셨고, 사단의 권세인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실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함께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죄의 권세 아래에서 구해내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히셨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 가운데 우리를 불러 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하나됨은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마음 문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여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신 분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행하신 분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동일하시며 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 문을 여신 것은 천지를 만드신 성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며,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은혜를 부어주신 것은 아들이신 성자 예수님의 뜻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한 분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면서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한 분 하나님과 연합된 우리는 교회의 모든 성도들과 주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어떻게 하나기 되겠습니까? 같은 음식을 계속 먹어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숙식을 함께 하고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11절 말씀은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알려 주는 본문입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무엇을 같이 하라고 되어 있습니까? 바로 마음을 같이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을 같이 해서 결국 우리의 마음이 이르러야 할 지향점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연합될 수 있는 단 하나의 비결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모든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같은 마음을 가지면 하나가 되는데 그 마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인 것입니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까?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렘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우리의 마음이 심히 부패하고 거짓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 역시 교회 지체들이 서로를 한 마음으로 아껴주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며 서로를 대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죄의 지배를 벗어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사명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받은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4:1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4: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4: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나와 남이 다르고 내가 남보다 나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결점과 미운 마음만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죄의 지배 아래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될 수 없었던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피로 해결하신 이유는 그 피로 우리를 하나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을 따라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우리 교회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

2016.07.26 14:28 | Posted by 강언

20160726 새벽설교

마음에서 나오는 것

본문: 마태복음 15:10-20


[도입: 더러움에 대한 착각]


여름철 음식물 쓰레기를 일주일에 한 번씩 내어 놓으면 더운 날씨로 인해서 쓰레기통에서 악취와 벌레들이 나타나곤 합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 온 날이면 집 안에 깨끗하게 정리된 그릇들과 가구들이 더 깨끗하게 보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보고 경험하는 더러운 것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 더럽고 깨끗한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더러움이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더러운 것들을 피하거나 제거하면 우리는 깨끗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본론1: 더러움에 대한 착각이 깨끗함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깨끗한지 더러운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착각하며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깨끗하다는 것을 우리가 정한 기준에 따라서 판단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마태복음 15장 1절부터 시작된 사건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따지며 묻는 것입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말은, 구약성경 외에 유대인들이 정한 율법의 세칙같은 것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탈무드가 대표적으로 장로들의 전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는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에 대해서 알려주는 규정들입니다. 그 규정 중 하나에 따르면 떡을 먹을 때는 반드시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몸 속에 더러운 것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사람을 더럽히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불결한 죄인으로 만든다는 논리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생각으로 자신에게 따지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통해서 분명하게 반박합니다.

8절과 9절 말씀입니다.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15: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장로들의 전통과 규정들이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배하는 모습 같지만 실상은 그 마음의 중심은 더욱 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을 거짓되게 경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절과 11절에서 예수님은 다시 사람들을 불러서 설명하십니다. 손을 씻고 안 씻고 사람을 더럽히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묻어 있는 더러운 것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입 속으로 들어가는 더러운 것은 눈으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손에 묻은 흙이나 더러운 것들은 바로 눈에 띄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눈으로 봐서 깨끗함과 더러움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으로 보는 것을 보고 더러운지 아닌지 판단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러움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누가 더럽고 무엇이 더럽고 깨끗한지에 대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외모로 취하는 것들로 깨끗함과 더러움을 판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눈으로 우리의 더러움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오직 마음에서 나오는 것만이 사람을 더럽히고 그 사람의 죄의 정도를 결정합니다.

예수님은 17절, 1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더러움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세상 모든 이가 마음에서 나오는 더러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나에게 예수님은 필요없는 사람이 되며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필요도 없고 소용도 없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 되는 것입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더러우며 하나님 앞에서 매일 죄를 반복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근원이 우리 마음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우리가 짓고 있는 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우리가 선악을 결정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결정하려 하고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의로움인지 결정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따지며 물은 행동의 중심에 바로 이 판단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한 기준에서 너의 제자들이 죄를 저지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 기준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죄가 없고 의로운데 너의 제자들은 죄를 저지라고 있다라고 예수님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위에 있는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속죄의 피를 흘리셔야만 했던 죄인들입니다. 이것을 매일 매일 기억하며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옛날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생각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들이 점점 심해져서 어느 순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살게 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착각이며 무지이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예수님을 무시하는 우리의 죄악입니다. 우리는 이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매일 매일 예수님의 보혈 앞으로 나아가 우리의 죄악된 모습을 비추어 보아야합니다.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의 하루 가운데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붙잡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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