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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한 손(느헤미야 2:1-10)

2016.04.26 23:34 | Posted by 강언

하나님의 선한 손


제가 3주 전 목요일 새벽에 느헤미야 1장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공동체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좋은 본문일뿐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본문입니다. 

3주 전 나눈 말씀에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의 기도는 그저 나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무작정 메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세운 약속을 신실히 지키는 분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약속에 근거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알고 있기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인격적인 만남 가운데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1장 11절에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그 때에 왕의 술맡은 관원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가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 우리로 치면 12월이고, 2장 1절에는 니산월이라고 되어 있는데 3-4개월 정도 시간이 지난 시점입니다. 느헤미야가 몇 달동안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서 왕을 섬기고 있다가 왕 앞에 나아가 포도주를 따라 드렸습니다. 주석서들을 살펴보면 그 시기가 페르시아의 축제 시기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왕 앞에 포도주가 자연스럽게 놓여져 있고, 술맡은 관리인 느헤미야가 왕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수 개월동안 왕을 섬기면서 왕께 이야기할 가장 적절한 때가 언제인지 생각하고 행동한 것입니다. 


왕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왠만큼 총애를 받기 전에는 하면 안되는 행동입니다.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는 식민지의 백성으로서 관리가 된 사람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황제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인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왕에게 나아가는 사람은 얼굴에 걱정하는 기색이나 두려워하는 기색을 띄면 안됐습니다. 두려운 기색을 띄면, 왕에게 반역을 꾀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아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수개월동안 한 번도 슬픈 기색을 왕에게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왕에게 포도주를 건네는 순간 느헤미야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왕이 충분히 눈치챌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왕이 느헤미야에게 물어봅니다.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이 말이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 왕이 이렇게 물을 때는 정말 걱정이 되어서 묻는 것일수도 있지만, 어찌 신하인 니가 내 앞에서 불편한 기색을 보이느냐? 나를 섬기는 것이 그리도 힘드냐는 뜻으로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가 훨씬 더 많고, 괘씸죄에 걸려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웠지만 왕에게 대답합니다. 두렵고 무서운 순간이지만 이 순간을 기도하며 준비해왔기에 가장 적합한 말을 왕에게 전합니다.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라는 왕을 축복하는 인사를 드린 후에 예루살렘 성읍이 황폐하고 성문들이 불타 버린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느헤미야가 쓰는 표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왕에게 하고 있는 말을 보면 느헤미야가 얼마나 세심하고 지혜롭게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 이름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민족적인 면이 부각되고 이스라엘과 페르시아의 국가 관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도시 이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라고만 말합니다. 구체적인 나와 내 민족의 상황을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표현으로 바꿔서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고향이 있기 마련이고, 조상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 있기 마련인데, 그 도시가 황폐하게 변해 버렸고, 성문이 불타고 있다는 말은 민족과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으며 안타깝게 여길 수 있는 말입니다.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므로” 


제가 얼굴에 어찌 근심이 없겠습니까? 라는 말로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의 전달이라기 보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한 것입니다. 내 마음이 상대가 공감할 수 있게 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일에 성공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어려운 인간관계를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이 느헤미야의 마음에 공감했습니다. 자신이 그 상황이라도 마음이 아프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에게 물어 봅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왕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왕이 소원을 물어 놓고 거절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들어주지 않을 소원이라면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왕이 이렇게 물었을 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그 즉시 기뻐하며 왕에게 원하는 바를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왕에게 얘기하기 전에, 속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왕에게 소원을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느헤미야로부터 본받아야 할 기도의 자세입니다.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면 그저 내 능력으로 하면 되겠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삶에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저 성공하는게 삶의 목표라면 죽도록 이를 악물고 치열하게 삶을 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에게 임하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소원하고 기도하는 바를 위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또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8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이 고백을 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이 말을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공동체를 위한 기도(느헤미야 1장)

2016.04.08 06:04 | Posted by 강언

 공동체를 위한 기도

느헤미야 1장 


느헤미야는 교회 공동체에서 지도자로 세워진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는데 매우 적합한 본문입니다. 느헤미야는 포로기 시절 이스라엘의 민족적 지도자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은 국가로서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민족적인 정체성이 강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느헤미야는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페르시아 왕궁에서 인정받는 매우 소수의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적 신분이나 생활의 안정성이 그 어떤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페르시아왕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에 기슬르월, 우리로 치면 12월에 느헤미야의 형제중 한 사람인 하나니와 몇 몇 이스라엘 사람들이 느헤미야에게 말을 건냅니다. “지금 유다와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있고 예루살렘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불탔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떠나온 고국의 소식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페르시아 궁에서 일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느헤미야는 그 소식을 듣고서 앉아서 수일동안 슬퍼했고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분명 고국에 큰 문제가 생겼는데, 즉각적인 행동이나 세력을 규합하기보다 하나님께 먼저 기도합니다. 금식하며 절실하게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하나님께 자신과 공동체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믿는다면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나의 문제 뿐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 생각대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기 전에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기도하며 금식하며 나아갑니다. 절실하게 나아갑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잘 붙들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무작정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속성에 근거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죄 많은 이 세상 가운데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크고 두려우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서 충분히 나타내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담대하게 공동체의 문제를 놓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알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해서 하나님을 더욱 더 잘 알수록 우리는 더욱 더 담대하게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느헤미야는 회개하며 자복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죄에 대해서 회개하며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 했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율법과 규례를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대로 이스라엘 나라가 징계를 받아서 패망했고 식민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셨고, 여러 나라에 흩어진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원망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대로 나라가 패망하고 민족이 세계 속에 흩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다시 이스라엘 땅을 회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기도이기에 아주 당당하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9절에서 11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나님 제가 기도하오니 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제 기도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라고 강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가 자신의 소원을 비는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새벽에 우리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간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Let It Be 누가복음 1장 26절-38절

2016.04.01 06:31 | Posted by 강언

Let it be

누가복음 1:26-38


Intro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 1,2는 모두 동일한 밴드의 노래입니다. 바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와 렛잇비입니다. 팝송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고 제목을 알 수 있는 노래가 비틀즈의 이 두 노래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왜 비틀즈의 노래 제목과 같은 “렛잇비”인지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렛잇비를 작사 작곡한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노래는 아주 많은 부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4세의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폴 매카트니는 20대의 어느날 꿈 속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너무나도 그리던 어머니를 꿈에서 만난 폴 메카트니는 어머니가 정확히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신을 위로하며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말씀을 주셨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힘들 때에 자신에게 나타난 어머니 Mary에 대한 노래를 만든 것이 Let it Be 입니다. 


let it be 노래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이 가사가 이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처음과 끝입니다.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어머니 마리아가 내게 다가와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세요. “Let it Be”


이 노래를 만든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폴 메카트니에게 물었습니다. Mother Mary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냐고 물은 것이죠. 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물론 처음 이 노래를 만들 때는 Mother Mary는 제가 꿈 속에 만난 제 어머니였습니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 노래를 사용한다면 저는 행복할 것 같아요.” I'm quite happy if people want to use it to shore up their faith.


저는 오늘 설교를 통해서 이 노래가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고,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말씀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고지하는 수태고지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천사 가브리엘은 6개월 전에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찾아가 사가라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임신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뒤에 엘리사벳의 사촌인 마리아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해서 5개월 동안 임신 사실을 숨기고 숨어 지냈고 그 이후에는 사람들에게 공개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6개월차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왔을 때는 이미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임신 소식을 알았을 것입니다.


27절에 보면 가브리엘이 찾아간 시점이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한 후이고 아직 결혼을 하지는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찾아가 평안의 인사를 전합니다. 성경에서 천사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많은 경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고 말하고 “평안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깜짝 놀라서 도대체 이 일이 무슨 일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천사가 찾아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천사가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사람에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느낄 수 없는 거룩한 존재에 대한 경외감 때문에 무서워하며 떨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을 광야에서 만날 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30절에 천사가 마리아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무서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는다고 천사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의 천사가 여러분에게 오면 무슨 말씀을 전해 주실 것 같으십니까? 많은 경우에 천사가 우리에게 온다면 아주 행복한 일들이 일어나거나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 가요 중에 “기분 좋은 상상”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는 한국 사람들이 천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어느 날 천사가 네게로 와서 너의 소원 하나를 물어본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말할래?” 


천사가 오면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이고, 마귀 사탄이 우리에게 오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우리는 흔히 생각하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천사가 전해주는 소식이 우리에게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가 그랬습니다. 현재 요셉과 약혼한 상태인데, 결혼 전에 아기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천사에게 들은 것입니다. 신명기 22장 23절24절은 약혼한 여자가 약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지게 되면 두 사람 모두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돌로 쳐서 죽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고 율법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말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자신이 가진다는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으로 자신을 내모는 말씀이었고,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더럽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은 그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임신을 해서 낳을 아들이 큰 자가 될 것이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고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주었던 왕으로서 권위를 주며 영원히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는데도 마리아는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분명 축복의 말씀이지만, 그 축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도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34절에 마리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천사의 말을 부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외면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천사가 뭐라해도, 하나님의 천사가 뭐라고 말해도 처녀가 홀로 잉태하여 아기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나의 아들로 태어난다고 해도, 약속된 메시야가 내 뱃속에서 잉태된다고 해도 그로 인해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고뇌하고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다시 말씀합니다. 35절부터 3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너에게 임할 것이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덮을 것이므로 너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될 것이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날 것이니 이 사실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임신할 수 없었던 엘리사벳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해서 이미 임신 6개월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이 고뇌하고 번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부인하려던 마리아를 뒤흔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자신의 생각 속에서 처녀가 홀로 임신하는 것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이 일만은 어쩔 수 없다고 굳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밑바닥에는 어떻게든지 약혼자에게 의심을 사고 사람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에 의해서 마리아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재구성되었습니다. 아무리 임신할 수 없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했다고 해도, 지금 고통과 두려움의 순간에 마리아의 하나님은 능력이 부족한 하나님이었으며 모든 일을 능히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마리아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분명하고 단호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마리아가 순간적으로 품고 있었던 생각의 중심을 꿰뚫어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능치 못함이 없다는 것을 믿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설령 그 말씀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 아닐지라도, 오히려 나를 고통으로 밀어넣는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무엇입니까? 복된 삶은 무엇입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행복한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요구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어찌 이 일이 있으리요?”라고 물어보면서 도망가시겠습니까?


어쩌면 우리가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복을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한 복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이끌어가신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까요? 많은 돈, 직업에서의 성공, 사람들로부터의 인기, 좋은 학벌…. 객관적으로 좋은 조건들이 있으면 삶의 괴로움이 적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일정 부분 그것이 사실인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삶의 제일 큰 기쁨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조건들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들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궁극적으로 기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을 기쁘게 만들까요?


그것은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뤄지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내 삶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잠시 살다 가는 이 땅의 허무한 인간의 삶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 가운데 이루어진다면 그것만큼 우리 인생을 복되고 기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있겠습니까? 사망의 권세 아래서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 아래 놓여 있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인생으로 변모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마리아는 고백합니다. 

1장 3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이 부분을 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도 버전마다 각각 다르게 번역하기는 하지만, ESV 성경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And Mary said, “Behold, I am the servant of the Lord; let it b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Let it b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이것이 마리아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저는 하나님의 종입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섬기는 사람이오니 하나님의 뜻이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가브리엘 천사의 수태고지로 인해서 근심하고 괴로워하던 마리아가 이제 기쁨으로 고백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이뤄지는 것이 가장 복되고 기쁜 일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장 극심한 고통과 근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확신의 고백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Let it b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소서


Let it be라는 노래를 세상 사람들은 그저 순리대로 사세요라고 생각하거나 다 잘 될거에요 라고 생각하며 부를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노래를 다르게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근심 중에 있을 때, 성모 마리아가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고백하는 것입니다. Let it b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우리를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복음의 말씀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이번 주에 Let it be를 한 번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불러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설명해 주십시오. Let it Be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삶에 이뤄지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Let it be 말씀대로 내게 이뤄지는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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