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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로운 세상

전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2006.10.4)

by 강언 2008. 6. 25.

기독교윤리학, ‘전쟁과 정치’ 7장을 읽고

전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파병국가의 국민이며 성도이며 공군중위로 근무했던 나의 실존적 고민을 중심으로

 강성호


나는 공군 중위였다.

신대원 입학 면접 때, 내가 뽑은 질문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그 날 나는 공군장교 제복을 입고 갔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적절한 질문을 뽑았다고 생각하였다. 나에게 ‘양심적 병역거부’는 실존적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군인이었고, 또 스스로 지원하여 장교로 입대하여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병역 거부 이유가 기독교 윤리에 기초한 것이라면, 나는 성도로서 군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때, 나의 대답은 “ 군대는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 개혁교회의 입장은 군대는 교회의 안전 보장을 위한 기관이고, 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인 우리는 병역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사명을 돕는다는 당당함과 자부심으로 병역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이었다. 그 때 나의 사회적 역할이 장교인 군인이었기에 군대에 대한 기독교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내게는 중요했다. 평소 군대에 대하여 정리한 입장1)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대답하고 면접을 끝낼 수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인 나에게 전쟁은 실존적 문제였다.

면접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나의 대답이 정당한 것인지 고민했다. 전쟁을 거부하고, 폭력과 살인을 거부하는 병역거부자들의 입장에 대한 고민없이 대답한 나를 발견하였다. 이런 고민 때문에 지난 여름방학에 한동대 교수로 있던 김두식 교수의 책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를 읽었다. 그 책을 통해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의 주장과 정당전쟁론에 대한 반박을 대하면서 전통적인 교회의 전쟁에 대한 생각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 평화주의가 옳고, 정당전쟁론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해서 성도인 우리가, 성도인 내가 고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정당한 전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라크전의 파병국의 국민이기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가 전쟁에 대해 고민하고 답해야 한다.

교회는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에 속한 존재로,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존재로 이 땅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현실 세계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것이다. 전쟁이 있는 이 땅 위에 교회가 있기에 교회는 전쟁에 대해 입장이 필요하다. 「전쟁과 정치」 7장의 결론이 ‘평화를 향한 교회의 과제’인 것은 교회가 전쟁에 대해서 입장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기독교 윤리를 말한다면, 그것이 어떤 입장에 서 있든, 반드시 교회의 과제와 교회의 책임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옳으냐를 밝히는 것도 기독교 윤리학이 다룰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그보다 먼저 인정하고 고백해야 할 내용은 ‘교회가 전쟁에 대해서 고민하고 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고민은 우리의 정체성에서 나오는 고민이어야 한다.

7장 결론의 말미에서, 저자는 교회를 종말론적 평화를 맛본 평화의 공동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교회의 고민이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잇닿아 있음을 말해 준다. 평화의 공동체로서, 또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 보여야 하는 공동체로서 교회는 전쟁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고민 속에서 교회가 정당전쟁론을 취할 것인지 기독교 평화주의를 취할 것인지는 치열하게 고민하여야 할 그 다음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에게는 전쟁에 대한 교회의 진지한 고민 그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든 지금 필요한 것은 교회의 책임과 과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점에서 ‘전쟁과 정치’의 제 7장의 내용을 통해서 교회사 가운데 나타난 교회의 전쟁을 대하는 태도를 알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라크전 파병 연장 동의안에 대해서부터 교회와 우리가 고민을 시작하자.

파병연장 동의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먹고사니즘2)”에 빠진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현재 우리의 전쟁인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하지만 앞에서 밝혔듯이, 전쟁은 하늘의 평화를 소유한 교회가 답해야 하는 문제이다. 성도인 우리가 답해야 하는 문제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파병의 당사자인 것이다.


기독교 윤리는 ‘지금 여기에서’를 강조한다.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외면하는 것은 성도의 바른 태도일 수 없다. 지금 여기의 문제로서 ‘이라크전 파병 연장 동의안’이 우리에게 있고, 이라크 전쟁이 있다. 파병연장 동의안에 대한 고민을 교회와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고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허형도형이다. 형은 내가 입대했을 때, 장문의 편지를 통해서 성도가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는 데 일조하는 것임을 주지시켰다.


 

2)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일이 경제적 부분, 특히 생계의 부분이라는 이념을 뜻한다. 현재 모든 신문 및 기독교계에서도 횡횡하고 있는 것은 바로 ‘먹고사니즘’(맘모니즘의 또다른 변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주)이다. 이 먹고사니즘에 근거한 비판이 가득한 것이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