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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음악

킹콩을 들다(2009)

by 강언 2009. 8. 8.

신앙의 눈으로 영화읽기: <킹콩을 들다(2009)>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여자 역도 선수가 되는 것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

영화를 볼 때 관객이 처한 고유한 정황과 삶의 내력은 남들과 다른 지점에서 감동과 통찰을 만들곤 한다. 영화 <킹콩을 들다>가 그랬다. 이 영화에서 그리스도의 제자의 모습을 묵상할 수 있었다. 역도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에서 제자도를 생각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도를 배우겠다고 목청껏 소리치는 여중생들의 모습에서 소명을 굳건하게 붙잡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왜 그럴까? 여학생이 역도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몸매도 망가지고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돈도 벌기 어려운 종목이다. 더군다나 영화 속에서 역도를 지도하는 이지봉 선생님도 역도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했다가 팔과 심장에 이상이 생겨서 평생 지병을 가지게 된 분이었다. 역도부로 모인 6명의 학생들 역시 역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역도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열정이 있었다. 그 열정이 역도에 이골이 나서 아이들에게 역도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던 선생님을 바꾸어 놓았다.

아이들에게 역도를 가르쳐 주기 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 한 때의 뜨거워진 마음으로 진로를 결정하고서 평생 후회할 수 있기에 묻는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메달 따고 돌아와도 별로 주목받지 못할 건데 그래도 하겠느냐고. 타이어를 끌며 모래밭을 달리는 훈련을 하면서도 이래도 역도를 하겠느냐고. 아이들은 목이 터져라 그래도 하겠다고 대답했다.

세상 일에 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잠시 잠깐 장난으로 할 일이 아니라 제대로 하겠다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고생했는데도 사람들의 인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더더욱 나서기 어렵다. 그래도 그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다면 그 결심은 굳건해야 한다. 이미 서러움과 눈물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일 자체가 좋아야 하고 그 일을 통해 얻는 기쁨을 알아야 한다. 이지봉 선생님의 질문은 마치 그리스도인에게 제자의 삶을 살겠느냐고 묻는 예수님의 음성처럼 들렸다. 인정도 못 받고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고 목숨까지 내어 놓아야 할 지 모르는데도 그 길을 가겠느나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음성처럼 들렸다.

 

 

자기 전부를 내어 주는 사랑과 헌신

 

영화 속 아이들은 그 길을 가기로 결심했고 열심히 훈련을 받으며 준비했다. 자신의 전부를 쏟으며 사랑으로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함께 했기에 더욱 열심히 할 수 있었다. 힘든 훈련만을 강요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본을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제자도가 본을 보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완성되듯이 아이들은 선생님을 통해서 역도를 배웠고 역량을 키웠다. 자기 전부를 내어주는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이 모든 교사들의 모범이 된 것은 예수님의 방식만이 사람을 진정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좋은 훈련 프로그램과 좋은 시설로도 절대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들고 우뚝 일어서라!!

이지봉 선샘님이 영자에게 써 준 편지의 마지막 당부는 "세상을 들고 우뚝 일어서라"였다. 이 말은 자기 전부를 내어주는 사랑으로 가르친 선생님이기에 할 수 있는 당부이다. 주는 것 없이 무책임하게 명령과 당부만 하는 사람의 말은 의지할 수도, 힘이 되지도 않는다.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이 제자들을 진정 제자되게 하였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며 우리를 세워 주시고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신다. 성도들이 자기 힘으로 홀로 싸우게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이 땅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방식으로 사랑하며 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교회 학생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르치고 보살필 수 있는가? 믿지 않는 직장의 동료와 이웃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별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조롱당해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원수를 사랑하고 5리를 가자하면 10리를 함께 가는 사랑을 보일 수 있겠는가?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기쁨으로 목청껏 소리쳐야 한다. 자기 전부를 주시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능력으로 그 길을 가겠다고. 이미 우리가 전부를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지봉 선생님을 통한 아이들의 변화를 영화가 보여 주었다면 우리의 헌신을 통한 세상의 변화를 소망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